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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능한 과학자 남편을 둔 중년의 여성 '클레어'는 하나뿐인 딸을 대학에 보낸 뒤 싱숭생숭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어느 날 이사 온 지 얼마 안 된 이웃집 '퓨어' 부인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들리자 묘한 동질감을 느낀 '클레어'는 살며시 다가가려고 한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퓨어' 부인이 보이지 않고 그녀의 남편 '워렌 퓨어'가 수상한 행동을 거듭하자 '클레어'는 이를 의심하기 시작한다. 망원경까지 갖춘 채 '클레어'의 의혹은 점차 확신이 되어가던 와중에 남편 '노먼'이 집을 비울 때마다 현관문이 스르르 열리거나 액자가 갑자기 떨어지는 등 기현상이 벌어져 홀로 있는 '클레어'를 옥죄어 온다. 이를 '퓨어' 부인의 원혼이라고 믿는 '클레어'는 유령이 남긴 단서들을 따라 진실과 서서히 마주한다.

 

  [백 투 더 퓨처], [포레스트 검프], [콘택트] 등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은 광활하면서도 감성을 자극하는 영화들로 유명한 인물이다. 저메키스를 논할 때 결코 빠지지 않는 점은 바로 테크닉에 관한 이야기인데, [포레스트 검프]에서 실존 인물과 가공 인물을 한 장면에 나란히 놓는 CG나 [컨택트]에서의 압도적인 웜홀 시퀀스, [폴라 익스프레스]의 모션 캡처 기법과 같은 기술력은 시간이 꽤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로버트 저메키스는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도전 정신을 잃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이며 스필버그를 잇는 할리우드 장인으로 등극했다. 그런 와중에 내놓은 [왓 라이즈 비니스 (What Lies Beneath, 2000)]는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정통 호러 작품이다. 마치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살아 돌아온 듯 [왓 라이즈 비니스]는 늘 정교하고 세련된 분위기를 자랑하며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감흥을 남긴다.

 

  영화는 흡사 현대판 [이창]을 감상하는 것처럼 시작한다. 고전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아닌 미셸 파이퍼가 연기하는 주인공은 이웃집 남자를 가족 살해범으로 의심하며 그의 생활을 염탐한다. 그러나 그녀는 제임스 스튜어트 같이 말끔한 사회인이 아니라 평범한 가정 주부라서 남편 해리슨 포드한테 상황을 이야기해도 과민 반응으로 무시당할 뿐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영화 속 주인공이 중년의 여성이라는 점이다. '클레어'는 한때 유망한 첼리스트였으나 결혼 이후 경력이 단절되어버렸고 삶의 초점이 남편과 자녀를 향한 헌신으로만 맞추어졌다. 이로써 영화는 여성으로서의 삶 혹은 부부 관계에 대한 초상 등 보다 다채로운 이야기를 비추게 되는데 이후 초자연적인 현상을 끌고 들어와 주인공의 불안한 심리를 극대화시키며 또 다른 국면으로 전환시킨다. 마치 [이창]에서 [싸이코]로 급변하는 듯 작품의 분위기가 변하지만 고전 작품을 헌정하는 데만 들뜨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정서를 느릿하면서도 깊숙이 유지한다.

 

  [왓 라이즈 비니스]에서도 저메키스 감독의 특출난 면모가 돋보이는 장면이 여럿 있다. 거듭 등장하는 거울의 이미지나 물의 이미지는 베일에 감추어진 진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하며 미스테리 호러라는 장르와도 조화를 이루어 관객들에게 섬뜩한 인상을 새긴다. 특히 후반부에서는 그동안 정적이었던 촬영마저 분위기에 걸맞게 격정적으로 바뀌는데, 어느 순간에는 기교를 과시하기까지 하여 영화 팬들로 하여금 대체 어떻게 찍었나 하는 궁금증과 흥분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영화를 다 감상하고 나면 작품명에 대해서도 다시금 돌이켜보게 된다. 'What Lies Beneath'를 굳이 번역하자면 '저 아래에 있는 것'이 되겠지만 가운데의 'Lies'라는 어감이 심상치 않게 다가온다. 과연 웰메이드 미스테리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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