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기증 (1958)] Review
  • 2021. 7. 10. 0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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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고소공포증 탓에 업무 도중 동료 경찰을 잃은 '스코티'는 책임감을 느끼며 형사직을 사임한다. 죄책감에 자유로워지는 것도 잠시, 한동안 연락이 없던 대학 동창 '개빈'이 기이한 의뢰를 부탁한다. 다름 아닌 자신의 아내 '매들린'한테 100여 년 전에 죽은 망령이 씌었으니 미행해달라는 것.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터무니없는 부탁에 '스코티'는 그저 당혹해하지만 이내 본인 역시 '매들린'의 낌새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넋이 나간 듯 샌프란시스코를 방랑하던 '매들린'이 급작스럽게 바다에 몸을 던지자 뒤를 쫓던 '스코티'는 머뭇거릴 새도 없이 친구의 아내를 구조한다. 이를 계기로 '매들린'과 '스코티'는 금세 가까워진다. 환청에 고통스러워하던 '매들린'은 '스코티'에게 점차 마음을 열어가고 '스코티' 또한 망령의 정체가 무엇인지 수사에 박차를 가한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대표작 [현기증 (Vertigo, 1958)]은 지난 2012년 영국의 '사이트 앤 사운드' 잡지가 역대 최고의 영화 1위로 선정할 만큼 이미 많은 이들의 기억에 각인된 걸작이다. 마치 감독 본인의 참회를 극영화로서 보는 듯한 [현기증]은 작품 안에 내재되어 있는 가치가 겹겹이 쌓여 있어 감상할 때마다 늘 새로운 인상을 자아낸다. 히치콕이 연출한 대부분의 컬러 영화들이 그렇듯이 [현기증]은 유독 색상의 쓰임이 중요한 작품이다. 가령 '스코티'가 처음 '매들린'을 만나는 레스토랑 장면에서는 벽지를 붉은 색으로 처리하고 반대로 '매들린'에게는 그 보색인 녹색 드레스를 입게 하여 단번에 해당 인물로 시선을 집중시키는 효과를 만들어낸다. 흔히 언급하는 360도 키스 장면 역시 줄곧 강조하던 녹색을 활용하지만 '죽은 여인이 비로소 눈앞에 살아 돌아왔다'는 유령의 색으로 변주시켜 감탄을 넘은 기함을 토하도록 한다.

     

      [현기증]의 인물들은 저마다 성적 결함이 있다는 점에서 매력을 불러일으킨다. 히치콕 감독의 영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지만 [현기증]은 그 악취미를 전면으로 드러내 의의를 지닌다. 예컨대 황금기 할리우드의 대표 배우인 제임스 스튜어트를 히치콕 감독은 자신의 방식으로 파괴시키고 비틀어대는 데 열중한다. 아무리 스튜어트가 미국의 국민 배우라고 한들 [이창]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관음증 환자로 변모시켰고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에서는 무기력하게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로 만들었으며 그 능력이 정점에 달한 [현기증]에서는 마수에 걸려들어 남성성이 거세당하는 인물을 연기시키기까지 했다. 결국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 '스코티'는 더 이상 닿을 수 없는 존재에 집착하여 스스로 그 허상을 구현하기까지 하는 처량한 비극에 빠진다.

     

      '스코티'뿐만 아니라 '매들린'이나 '주디' 등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끝도 없이 즐비해 있지만 영화에서 가장 사소한 듯하면서도 결코 작지 않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인물은 주인공의 이성 친구인 '미지 우드'이다. '미지'는 '스코티'의 또 다른 대학 동창으로서 서로 시시콜콜한 농담을 던질 만큼 절친한 사이였으나 '스코티'가 '매들린'에 빠져들어갈수록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며 그녀 역시 존재하지 않는 대상에 위기감을 느낀다. 이 영화가 알프레드 히치콕 본인의 거울과도 같은 작품이면서 동시에 스크린을 향하고 있는 관객의 거울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증명하는 장치이다. 특히 '미지'가 등장할 때마다 끊임없이 주인공의 엄마를 자처하는 듯한 예사롭지 않은 대사는 이성을 대할 때 적잖이 볼 수 있는 인간의 심리를 은연히 반영한다.

     

      마치 초현실적인 호러 소설처럼 시작한 영화는 어느새 무시무시한 로맨스로 탈바꿈되어 관객들을 장악한다. 스릴러의 관점으로 봤을 때나 로맨스의 관점으로 봤을 때나 [현기증]은 너무나도 흥미롭고 아름다운 면모를 가졌기에 제작된 지 6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그 저력을 과시하고 있다. 파울 페르후번의 [원초적 본능]이나 셀렌 시아마의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등 이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영화들이 이후로도 많이 나왔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현기증]의 존재에 대해서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다. [현기증]의 녹색이 없었다면 데미언 셔젤은 [라라랜드]에서 엠마 스톤의 가련한 순간을 담을 때 상당한 고민을 치렀을 것이다. [현기증]의 얽히고 설킨 로맨스가 없었다면 폴 토마스 앤더슨의 [팬텀 스레드]는 지금의 결과물보다 훨씬 고분고분했을 것이다. 영화계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이 있다면 그건 의심의 여지 없이 [현기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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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2

    1. 나비

      스타맨님.... 이 글 너무 완벽해요.... ㅠㅠㅠㅠ 스타맨님과 현기증이라니... 흐흑...
      처음 봤을때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고 재미있고 싸이코틱하면서도 예술적인 영화가 다 있지... 하면서 오싹했던 기억이 나는데 스타맨님 글은 영화를 직접 안 보고도 그 느낌을 그대로 재현해주시네요
      특히 색조 대비는 저는 생각조차 못했던 거라... 히치콕 컬러영화는 색 대비가 중요하군요..(메모) 전 그저 여주인공의 미모에 감탄만(...) 하며 봤거든요ㅎ.ㅎ
      미친것같은 ost를 들으며 이 글을 읽으니 감격이 두 배로 더하네요 저도 오늘은 오랜만에 현기증을 다시 봐야겠어요 ><

      2021.08.19 11:18 edit/del reply
      • BlogIcon stakra

        저는 처음 봤을 때 뭔지 모를 압도감만 밀려왔는데 이번에 유독 색상에 집중하며 봤더니 조금이나마 명료해진 거 같아 좋았어요! 특히 대사로 줄줄이 설명하지 않고 여러 카메라 무빙이나 다양한 시각 효과로 흡수시킬 때 이런 게 거장의 품격이구나 새삼 깨달았네요 ㅋㅋㅋㅋ

        글이 뒤로 갈수록 간잽이 경향이 나와서 긴가민가했는데 나비님이 좋게 봐주시니 너무 감사할 따름입니다..!! 나비님한테도 이번 감상이 전보다 더욱 뜻 깊었으면 좋겠어요 +_+

        2021.08.19 12:30 신고 edit/d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