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한동안 음악을 들을 때면 해외 팝이나 대중 가요보다도 영화 음악을 주로 들었던 순간이 있었다. 인지도 측에서는 [스타 워즈], [해리 포터]의 존 윌리엄스나 [미션], [시네마 천국]의 엔니오 모리코네가 여전히 쌍벽을 이루지만 유독 내 플레이리스트를 가득 채웠던 건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부드럽고도 섬세한 멜로디였다.

 

  모리스 라벨, 클로드 드뷔시 등 클래식 음악의 영향을 받은 이 프랑스 출신 음악가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 등 이름만 들어도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들을 담당하며 현재 할리우드에서 가장 잘나가는 영화 음악인으로 자리매김했다. 북미, 유럽 두 대륙을 오가며 늘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음악 10곡을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Griet's Theme

 

 

  이전까지 프랑스가 본거지였던 데스플라는 2003년에 개봉한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계기로 세계 무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영화를 연출한 피터 웨버 감독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특유의 절제미와 서정성이 마음에 들어 섭외했다고 알려져 있다. 플룻과 트럼펫으로 처음 음악을 배운 뮤지션답게 목관 악기를 전면에 둔 구성이 눈에 띈다.

 

The Golden Compass

 

 

  2000년대에는 [반지의 제왕]과 [해리 포터]가 불을 지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판타지 소설 각색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필립 풀먼의 대작 [황금 나침반] 역시 뒤늦게 대세에 따랐지만 영화는 앞선 작품들에 비해서 아쉬운 결과를 낳았다. 그럼에도 데스플라가 작곡한 메인 테마는 고전적이면서도 실험적인 음악을 들려주며 작품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껏 살렸다. 원작 역시 훗날 BBC 영드로 명예 회복했으니 결과적으로는 해피 엔딩 아닐까 싶다.

 

Dinner Waltz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나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등을 통해 데스플라의 작품들을 접한 적이 있었지만 이 사람의 이름을 뚜렷이 각인시킨 계기는 [색, 계]를 감상하고 나서였다. 미디어의 악명 높은 묘사 때문에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작품이었지만 정작 영화는 너무나도 서글픈 명작이라서 놀란 기억이 있다. Dinner Waltz가 흐르는 장면은 영화에서 딱히 중요한 부분이 아니었는데도 흘러나오는 음악이 무척 아름다워서 지금도 여전히 생각나면 꺼내 듣는다.

 

Wong Chia Chi's Theme

 

 

  마찬가지로 이안 감독이 연출한 [색, 계]의 메인 테마곡. 1940년대 일제 치하의 상하이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초반부의 진행이 다소 첩보물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인물의 어지러운 내면을 반영하듯 테마곡 역시 유려한 것 같으면서도 살얼음을 걷는 듯 은연한 긴장감을 그려낸다. 다른 건 몰라도 유럽의 작곡가가 철저히 동양 국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의 한축을 어색함 없이 표현했다는 점에서 매번 놀란다.

 

A New Life

 

 

  데이빗 핀처의 필모그래피치고는 로맨틱하고 따스했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음악 역시 알렉상드르 데스플라가 담당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나 [작은 아씨들] 등 최근에도 꾸준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지만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라는 음악인의 대표작을 꼽아보라면 이 작품을 이야기하고 싶다. 어느 인물의 기이한 희노애락을 담은 본작처럼 때로는 서정적이면서 때로는 몽환적인 음악적 특징이 한데 묻어나 있다.

 

New Moon

 

 

  판타지 영화 붐은 결국 [트와일라잇]이라는 최대 장벽까지 낳게 되고... 알렉상드르 데스플라의 전곡을 훑던 중 근사한 오케스트라 음악이 있어 곡명을 확인하는데 다름 아닌 [뉴 문]의 테마곡이라 깜짝 놀랐었다. 음악에 속아 감상한 영화는 차마 끝까지 못 볼 정도였지만 음악만은 데스플라의 최대 걸작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훌륭하다. [황금 나침반]이나 [뉴 문], [발레리안 : 천 개 행성의 도시] 등 어째 블록버스터로 가면 재능 낭비만 하고 돌아오는 것 같다.

 

The King's Speech

 

 

  [레미제라블], [대니쉬 걸]을 통해 국내에도 다양한 팬을 보유한 톰 후퍼 감독의 아카데미 수상작 [킹스 스피치]의 메인 테마곡. 산뜻한 피아노 연주가 주를 이루다가 어느새 단조로 변주되고 끝내 삭막한 바이올린 선율을 들려주는 빼어난 진행을 갖추었다. 말더듬이 왕을 소재로 한 영화는 실존하는 클래식 음악을 주로 삽입하여 실화의 현실성과 고상함을 부각시키지만 드문드문 사용되는 오리지널 스코어 또한 그에 못지않은 우아함을 뽐낸다.

 

Motherhood

 

 

  영상의 철학자 테렌스 맬릭 감독 역시 이토록 시적이고 아름다운 선율에 감명을 받았는지 6년만의 신작 [트리 오브 라이프]에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를 택하기 이른다. 가족의 비극과 우주의 기원을 방대하게 파고드는 작품답게 스코어 또한 미니멀하면서 웅장한 색채를 띤다. 뾰족한 피아노 연주나 되풀이되는 현악 세션은 마치 필립 글래스의 흔적이 떠오르기도 한다.

 

Severus and Lily

 

 

  데이빗 핀처, 웨스 앤더슨 등 거장들과의 협업으로 한창 주가를 이루던 중 마침내 [해리 포터]의 마지막까지 손을 대는 영광을 누린다. 비록 철두철미한 작품의 세계관이나 존 윌리엄스라는 막대한 선례가 있었으나 데스플라는 그런 존재감마저 자신의 장점으로 승화시키는 재능을 보여주었다. 특히 영화에서 가장 깊은 정서를 공유하는 스네이프의 회상 장면에서 그 면모가 빛을 발한다.

 

The Shape of Water

 

 

  그 사이 데스플라는 [제로 다크 서티], [고질라], [서프러제트] 등의 음악을 담당하며 안정권에 취한다. 그후 다소 평탄한 경력을 쌓지만 이내 길예르모 델 토로의 로맨틱 크리처물 [셰이프 오브 워터]를 통해 목관 악기라는 자신의 장점을 살려 동화적이고 음험한 분위기를 한층 강조하는 놀라움을 선사한다. 데스플라는 이듬해 아카데미 시상식 음악상을 수상하여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이은 2관왕을 차지한다.

'Music > Soundtrack'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이클 지아치노 A to Z  (0) 2021.07.21
취향 저격 공포 영화 사운드트랙  (2) 2021.07.20
알렉상드르 데스플라 A to Z  (0) 2021.07.2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