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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01 (52 Insights) 


데이빗 보위에 대하여
  90년대 언젠가 보위와의 연락이 끊겼어요. 그가 뉴욕에 살고 있다는 걸 알았으니 식당이나 길거리 같은 도처에 만날 법도 해서 별다른 움직임을 하지 않았죠. 그러다 보위가 세상을 떠났고, 막대한 후회감을 당연히 느꼈어요. 그의 마지막 앨범이 무척 마음에 들어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도저히 믿을 수 없었어요. 죽기 이틀 전에 나온 그 앨범은 아주 생생하고 에너지로 가득했죠.

마지막 기를 다 했다는 듯이
  네, 하지만 그게 보위의 마지막이었을 줄은 누구나 몰랐죠. 앨범은 에너지로 가득했고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했어요. 결코 유언으로 들리지 않았죠.

당신도 동질감을 느끼나요? 무례한 질문일 수도 있지만 비슷한 경험을 겪지 않으셨나요?
  비슷한 시기에 진단을 받았어요. 물론 아주 가까운 동질감을 느꼈죠. 저는 운이 좋아서 회복을 했고 그는 그러지 못했죠. 단지 운의 차이일 뿐이에요.

존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데이빗 보위나 루 리드 같은 사람들은 스스로의 무게를 어디서 느끼는지 확실하게 알잖아요. 자신이 어떤 걸 의미하는지 알고 있죠. 당신도 비슷한가요?
  글쎄요, 저의 바탕은 아시아의 전통 문화이기 때문에 제가 그런 부류는 아니에요. 저의 흥미가 불교라는 점에서도 연관이 있죠. 오랫동안 '무(無)'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는데, '무'는 불교의 핵심 철학이에요. 자아도 시야도 전부 아무것도 아니죠. 저는 세계 각지의 고대 문화를 좋아해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 일본의 아이누 민족. 이들의 생활 방식이 제게 아주 친숙하죠. 비대한 자아를 가진 서양인들과는 달라요.

전 세계의 도시를 돌아다니며 예술 작품들을 통해 당신이 누군지 보여줄 때마다 어떠한 의미를 품고 가나요?
  의미는 개인이 보고 들으며 아는 것이죠. 저는 저의 음악을 통해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않거든요.

그런가요? 당신의 작품에는 정치적인 의미가 깃들어 있는 것 같거든요.
  직접 말할 땐 그렇지만 음악을 만들 땐 정치적인 의미를 넣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저도 같은 인간이니까 정치적인 말을 하는 거지만 음악으로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별개예요. 음악은 음악으로서 존재해야 해요.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의미를 담으려는 도구가 아니죠. 그게 저의 신념이에요.

 

다큐멘터리는 보셨나요?
  네, 제가 직접 만든 다큐멘터리는 아니지만요.

처음으로 본 적이 언제인가요?
  1년 전입니다.

처음 봤을 때 젊은 시절 당신을 돌아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영화에서 저의 젊은 시절을 보니까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었어요. 그 때의 저는 자아가 너무 충만했고 야심도 너무 많았고 모든 것이 과다했죠.

정말 흥미로운 인생을 사셨는데, 우연히 영화 음악에 참여했다는 일화도 재밌었어요. 그런데 당신의 삶과 음악에 우울함이 내재돼 있다는 건 몰랐는데 동의하시나요?
  네, 저의 음악에는 늘 우울함이 있었죠.

당신도 그렇고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우울함은 어디서 비롯되었나요?
  글쎄요, 삶에 대한 걱정에서 슬픔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90년대 초반에 환경 오염으로 세상이 처참해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90년대 후반부터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그때 수많은 팬들이 제가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바흐의 열렬한 팬이죠. 바흐가 음악을 만들고 있을 때 세상은 슬픔과 비극으로 가득차 있었어요. 인간의 최대 수명은 50세에 불과했고 사람들은 신이 인류를 구원하기를 빌었지만 신은 나타나지도 않았죠. 그래서 바흐가 그토록 슬픈 음악을 쓸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공교롭게도 다큐멘터리에 나온 프로젝트 중 하나가 핵 폭탄을 중점적으로 다룬 LIFE 오페라였어요. 얼마 전 프리먼 다이슨이라는 과학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1940년대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생존자 중 한 명이었죠. 그는 오펜하이머와 닐스 보어가 남긴 유산과 그들이 결정해야 했던 어려운 선택들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오펜하이머의 유명한 어록은 "나는 세상의 파괴자다"였죠.
  당시 사람들의 뒷배경을 이해해요. 핵 폭탄을 개발함으로써 나치를 막으려고 한 거죠. 하지만 나치가 제거되고 나서 과학자들은 개발을 멈추려고 했으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어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 폭탄을 투여하는 대신에 후지 산의 형체를 파괴할 수 있는 폭탄을 투여하자고 군대에게 제안했다고 하죠. 사람들은 후지 산을 신성하다고 숭배하기 때문에 그 형체를 파괴시키면 일본 국민들의 정체성 또한 무너뜨릴 수 있어요. 그게 실제 시민들을 말살하지 않는 과학자들의 아이디어 중 하나였죠. 하지만 오펜하이머가 핵 폭탄의 쓰임새를 두 눈으로 목격했던 그 순간에 그는 굉장히 후회했다고 해요.

영화에서 대조되는 요소 중 하나는 후쿠시마의 파괴된 원자력 발전소를 방문함과 동시에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는 사실인데요. 원자력 에너지는 인류를 도울 수도 있지만 또 인류를 파괴시킬 수도 있어요. 이 기이한 대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물론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 치료법을 택하지 않는 방법도 있었죠. 양의학의 치료법을 받지 않는 생각도 해보고 다양한 치료법을 두고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좀 더 살고 싶었어요.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결정이었죠.

그 안에는 씁쓸한 유머도 들어 있네요.
  네, 모순적이죠.

 

자연을 바라보는 방식도 근사했는데요. 후쿠시마에 방문했을 때 "쓰나미가 밀려와서 소리를 자연으로 되돌려 놓은 것"이라고 이야기하셨죠. 우린 인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 봤을 때 자연 스스로가 늘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듯하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까 말했던 슬픔에 대해서도 관련이 있어요. 솔직히 저는 인류가 멸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린 세상을 파괴시키고 있어요. 핵 폭탄뿐만 아니라 어떤 행동으로든 말이에요. 이 행성이나 다른 종들의 암 세포와 다를 바 없죠.

그런데 최근 인식이 분명히 바뀌어가는 것 같아요.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죠.
  너무 늦지 않았다면 좋겠어요. 여전히 한 줌의 희망이 어디서나 실존하지만 자본의 힘이 너무 빠르게 파괴시키고 있어요. 지구는 약 45억 년간 지속되었고 그 기간 동안 수많은 종들이 등장하고 사라졌죠. 공룡처럼 말이에요. 인류가 존재하든 말든 지구한테는 상관이 없어요. 하지만 인류가 거의 모든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음악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봅시다. 당신 삶에도 영화 음악이 있다면 어떤 음악이 될까요?
제 삶을 영화로요?

발상을 해보자면요. 그동안 근사한 영화 음악을 작곡하셨는데 당신 삶과 어울릴 만한 영화 음악이 있을까요?
누군가의 삶을 하나의 음악으로 정의할 수는 없어요. 저마다의 인생은 한 가지 음악보다도 훨씬 더 복잡하죠.

"내가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이 음악을 틀어달라"는 말도 있듯이요. 당신을 한 명의 사람으로서 특징지을 만한 사운드트랙이 있나요?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곡은 바흐의 마태오 수난곡이에요. 그런데 저는 웃긴 사람이라 너무 우울한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너무 무거운 것 같아요.

당신은 힙합이나 일렉트로니카, 테크노에서도 지대한 영향을 끼치셨죠.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도 당신의 70년대나 80년대, 90년대 활동들을 돌이켜보며 쫓고 있어요. 이 모든 아티스트들한테 영향을 끼치는 당신의 역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ir나 Africa Bambaataa 같은 아티스트들 말이에요.
  글쎄요, 음악계에서 나이는 그 어떤 것도 의미하지 않죠. 더 젊거나 나이든 다른 세대들과 똑같은 정서를 나눌 수 있어요. 시대를 초월한 거예요. 그게 저한테 실질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죠. 제가 더 일찍 시작하고 다른 이들한테 영향을 끼쳤지만 똑같은 언어를 공유할 수 있어요. 그게 사실이랍니다.

현대 음악도 들으시나요? 
  네, Oneohtrix Point Never를 좋아해요. 30년이나 떨어져 있지만 같은 음악을 두고 이야기할 수 있죠. 그게 저한테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당신한테 와닿는 어록 한 가지가 있나요? "나는 세상의 파괴자다" 같은 것 말고요.
(웃음) 저는 세상의 파괴자가 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어록이 있다면, "적을수록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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